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시성 전투 (문단 편집) == 개요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m0LmbG6whZU)]}}} || [[645년]] 고구려를 침공한 [[태종(당)|태종 문황제 이세민]] 이하 당나라의 대군이 7월부터 9월까지 [[고구려]]의 [[안시성]]에서 2개월(60여 일) 동안 충돌한 전투로, 제1차 [[고구려-당 전쟁]]의 대표적인 전투이다. 개전 이후 [[당나라]]는 [[고구려]]의 여러 성을 함락했지만, 이 안시성을 공략하는 데 실패했고 결국 패퇴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안시성 하나에서 막혀 철수했다기보다는 안시성에서 당군의 발목이 잡혀있는 사이에 고구려군이 전열을 정비해 반격했고, 이에 당군이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된다. 기록을 상세히 살펴보면 안시성뿐만 아니라 요동 방어선 북방의 신성, 남방의 건안성에서 고구려군의 반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수성전(守城戰)의 교과서적인 전투'''로, 후대 한국의 역사가들이 안시성 전투 자체나 안시성 전투 전후로 벌어졌던 사건들을 예로 들어 [[주필산 전투|고구려군의 구원 시도 실패]]나 당시 당군의 공성 무기에 맞선 고구려군의 전략•전술들을 연구해 국방 전략을 논의했다. 그리고 [[살수대첩]]과 함께 '''중국에 대한 승리로서 자부심의 상징이 되었다'''. 270년 만에 [[중국 대륙]]을 통일한 [[수나라]]가 [[고구려-수 전쟁|고구려 침공]]에 실패하면서 극도의 혼란에 휩싸여 왕조를 세운 지 40년도 안 돼서 패망하고, 이어서 등장한 통일왕조 [[당나라]]의 태종은 '정관의 치'(貞觀之治)[* 당 태종의 연호를 딴 것이다.]를 이룩한 중국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황제로서 안시성 전투에서 패배하며 고구려에서 물러가는 서사시적인 전개가 특징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